구분 | 상세 |
저자 | 남충식 |
출판사 | 휴먼큐브 |
출간일 | 2014/05/23(금) |
후기 | ★★★★ (7.0/10.0) |
목차
들어가며
나는 참 다양한 기획을 해왔다. 운영툴 기획부터 이벤트 기획, 웹페이지 기획, 상품 기획까지.
구상한 바를 실현하기 위한 자원이나 방법은 각기 달랐지만, 여러 기획서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아이템이 매우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껏 나는 기획서로 다른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불필요한 핑퐁 없이 정확히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문서는 다소 복잡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목적-개요-기대 효과-순서도-화면 제안-데이터 테이블로 구성된 문서를 써 내려가며 이따금 회의에 빠질 때도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창작일까, 주어진 것을 정해진 틀에 기계적으로 욱여넣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까 하고.
총평
기획의 정수에 관한 고찰.
표지 일러스트가 기획은 2형식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맞아떨어졌을 때 전율이 일었다. 저자가 기획에 대해 얼마나 깊게 생각하여왔는지, 그 결과 얼마나 견고한 철학을 지니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랜 고민과 많은 경험을 통해 정립한 내용을 단번에 쏟아내 강요하기보다, 읽는 이가 차근차근 이해하고 공감하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하듯 재치 있게 기술한 점도 좋았다.
아쉬웠던 부분을 짚어보자면 먼저 간혹 튀어나오는 유머 아닌 유머가 다소 억지스러워 책 전체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획'이 기역으로 시작해 기역으로 끝나는 이유라든지……. 물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화법에 적응되기도 하고 주장에 설득력이 배가되어 섣불리 중도 이탈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
글자 배치와 생김새가 들쭉날쭉해 읽기 어려웠던 점도 아쉽다. 다양한 정렬과 효과는 저자의 메시지에 힘을 싣기 위한 장치겠으나, 책을 관통하는 단어가 '단순함'임에도 전반적으로 어수선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뭐, 둘 다 취향의 문제니까.
문장 수집
고수의 기획은 일목요연하다. 심플하고 명쾌하다. 쉽다. 군더더기가 없다. 재미가 있다. 울림이 있다. 한마디로 '맛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고수의 기획'은 간단명료하다. 그리고 그런 기획은 75%의 P(Problem, 문제) 코드, 25%의 S(Solution, 해결) 코드로 이루어져 있다.
P는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문제를 바르게 정의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고 해보자. '가뭄'은 관측 가능한 현상이고 '농작물이 말라죽은 것'은 결과다. 이때, 가뭄 그 자체를 문제로 치부하면 해결책은 기우제가 되어버린다. 본질에 보다 가까운 것은 '물 부족'이며 이는 개간 사업 등을 통해 개선 가능하다.
S는 해결의 기회를 찾아 기술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 제아무리 번뜩이는 해결책이 있다 한들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기획자는 끊임없이 현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가며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관련 용어, 프로세스를 공부하고 있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곤 생각치 않는다. 당장 나부터 🔗[용어 정리] 게임 데이터 분석 기본 개념 - 유저 및 게임 같은 포스팅을 했는걸.
요는 선후가 바른 순서로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지시해서, 어디선가 이렇게 했다는 걸 주워 들어서 대충 그럴싸해 보이는 이유를 한 두 줄 붙여놓고 기교 뽐내기에 열을 올리는 대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핵심 문제를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끈기 있게 해결하려 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욱 잊기 쉬운 내용이었다.
키워드 및 코멘트
01. 기획의 제1형식, P코드 이야기
목표는 '숫자'이지만 목적은 '철학'입니다. 철학이기 때문에 '목적의식' 투철하면 '열정'과 '용기'가 생기고 그래서 '도전'도 할 수 있는 거죠.
업무에 임하다 보면 경주마처럼 목표만 보고 달리게 될 때가 있다. '월 매출 ××원 기록' 같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를 달성하는 게 내가 일하는 이유라는 마음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더욱 멀리 보고 오래 뛰기 위해서는 '최상의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은 목적이 선행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02. 기획의 제2형식, S코드 이야기
"창의성의 비밀은 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
(중략)
훔치되 제품, 서비스, 디자인 등의 '겉 아이디어'는 훔치지 말라는 겁니다. 원리, 구조, 패턴 등 '속 아이디어'를 훔치면 티가 잘 안 난다는 거죠. 그리고 되도록 우리 분야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가져오면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지혜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휴대 전화, MP3 플레이어, 인터넷 서비스를 창조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요소를 결합했을 뿐이다. 그러나 잡스는 IT 혁명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경우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창작물은 모방의 결과물이다. 다채로운 것을 보고 익히며 떠올린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되는 대목.
03. P-S 통합 코드 이야기
프레젠테이션은 '감정이입'이라고 했습니다.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몸이 달아오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가하거나 딴생각 못하고 내 이야기에만 몰입하게 할 수 있죠.
'감정'으로 내 이야기에 몰입해주는 인간, 우리는 '친구'라고 부릅니다.
P-S 통합 코드 이야기 섹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오디언스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프레젠테이션도 한 편의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다른 매체에서도 여러 번 접하였지만, 짜임새 있는 자료로 무대를 장악하고 청중을 설득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저자의 말처럼 듣는 이를 이겨먹으려고만 하면 괜한 반발만 사기 십상이다. 오디언스의 건너편이 아니라, 같은편에 설 수 있도록 하자.
실무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도구를 찾고있다면 추천하기 애매하다. 그러나 이제 막 기획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거나 예전의 마음가짐을 되새기고 싶다면 본서만한 책을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