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상세 |
저자 | 김진명 |
출판사 | 새움 |
출간일 | 2010/07/20(화) |
후기 | ★★★☆ (7.0/10.0) |
목차
들어가며
나는 문학보다 비문학을 선호하는 편이다. 마음을 울리는 표현이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이야기도 좋지만, 같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생활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정보를 얻고 싶어 한다. 그런 내가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을 펼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주식 스터디의 추천 때문이었다.
왜 엉뚱하다고 말했냐 하면 주식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주식과 도박을 동일선 상에 놓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식은 개인이 전도유망한 기업을 물색하고 자본금을 대어 운영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주식을 조금 안다며 젠 체하려면 관련 개념들은 물론 환율, 시장의 상태, 경제/정치/사회/문화적 이슈, 개별 기업의 사업 내용 및 입지 등을 고루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주식 유통량, 거래량, 차트 같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앞으로의 흐름을 내다보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반면 도박은 개인의 주머니를 불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배움보다는 운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식을 진지하게 사고파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자신을 도박사처럼 취급하는 것, 주식으로 돈을 '땄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그런데 그 어느 그룹보다 주식에 진심인 스터디에서 제목부터 '카지노'인 이 책을 권한 까닭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총평
바카라를 통해 돈에 관한 마음가짐을 풀어낸 명작.
많은 미디어 믹스에서 도박은 한 번 그 맛을 보면 헤어 나오기 어려워 결국 파멸에 이르는 길로 묘사되곤 한다.
실제로 도박에 빠져 스스로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의 인생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오죽했으면 세계보건기구는 도박 중독을 일찌감치 정신 질환으로 규정하였고 우리나라는 문화체육부 산하에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두어 도박 중독 예방, 치유, 재활을 위해 힘쓰는 중이다.
본서의 주인공 서후는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이런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카지노에 밥먹듯 드나들지만, 돈에 대한 욕심은 없어 보인다. 주변이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와 흥분,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인한 절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도 초연히 명상록을 들여다볼 뿐이다.
서후가 카지노에서 그토록 차분할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도박이란 눈 깜짝할 세 운으로 큰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나 유희 거리라기보다, 돈에 관한 태도를 정비하는 정신 수양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서후는 바카라에 임할 때 언제나 몇 가지 원칙을 지킨다.
- 처음은 반드시 미니멈 벳으로 시작한다.
- 기회라고 생각될 때에만 벳을 하며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본전을 지킨다.
-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그들의 플레이에 신경쓰지 않는다.
- 먹고 마시는 것, 자는 것에 신경 쓰며 컨디션 관리에 힘쓴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 세운 계획을 상황에 따라 변경하지 않는 것이다.
서후의 규칙은 언뜻 단순하고 쉬워보이지만, "발을 아주 살짝만 더 담그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데." 하며 수시로 고개를 드는 욕망에 패배하면 절대 이룰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재테크에 임할 때, 나아가 살아가는 동안 돈을 돈을 대하는 모든 순간 필요한 것이다.
돈이 수단을 넘어 목적의 자리까지 넘보는 요즈음, 색다른 소재에 뜻깊은 주제 의식이 더해져 배움을 주는 책. 물론 서후, 은교, 병준, 한혁, 혜기 등 다양한 인물의 관계와 승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은 페이지가 확확 줄어드는 게 슬플 지경으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초반부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서후의 고뇌와 비밀이 후반부에 들어 몇 문장으로 휘몰아치듯 설명되는 것 정도. 조금 급해보이는 마무리 외엔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책이었다.
문장 수집
저 젊은이는 신중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요. 결코 경솔하게 베팅하는 법이 업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몇 번 베팅을 하는 게 그의 방식이랍니다.
몇만 원짜리 식사 메뉴를 고르는 데에는 한 없이 신중하면서 몇 백, 몇 천만 원짜리 주식은 왜 그렇게 덥석 덥석 사느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호가창을 보다 보면 "지금 매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지곤 한다. 그래서 시장과 기업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주식을 사는 대신, 주식을 사놓고 "왜 안 오르지?" 내지 "왜 떨어지지?" 하며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하는 상황이 생긴다.
카지노 게임은 과정입니다. 돈을 이겨오는 과정이 얼마나 진지하고 치밀한가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어렵게 이겨온 돈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하지만 쉽게 이겨온 돈은 쉽게 무너지지요.
앞선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서 좋은 매매를 하려면 몇 가지 필요한 게 있다. 바로 본인만의 기준, 루틴, 대응 방법이다.
본인만의 기준이란, "특정 공식으로 필터링한 종목 안에서만 매매한다." 같은 것이다. 공식을 세울 때에는 시총, 회전율, 배열, 거래 대금 등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예. 주가가 244일선 위에 있으면서 이동평균선이 정배열이고 거래대금이 1,000억 이상인 건들을 추린 뒤 종목이 시장의 주목을 받는 테마와 엮일 수 있는지 검토한다.)
루틴은 매매 시의 버릇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루틴은 시장(예. 지수, 주요 섹터)을 확인한 후 → 테마(예. 크기, 강도)를 체크하고 → 종목을 추린 뒤 → 전략(예. 목표 금액, 비중, 손절 라인)을 설계한 다음 → 대응(예. 손절, 추가 매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으로 공부 없이 종목을 매수해버리거나, 시장과 테마에 대해 학습하였어도 별다른 전략이 없는 상태로 매매에 임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설령 본인만의 기준, 루틴, 대응 방법 없이 시장에서 돈을 번다 할지라도 수익은 단기적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요행으로 인한 이익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승부를 다루는 사람에게 그때그때의 결과는 아주 조그만 티끌일 뿐이다. 그 티끌을 이어주는 하나의 커다란 원칙. 그 원칙에 결손이 나서는 인생의 승부를 결코 이겨낼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치밀하게 매매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많다. 중요한 것은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반복하진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복기다. 번거로워도 매매 일지를 작성하거나 다른 사람과 주기적으로 경험담을 나누는 게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고 고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치며
이상 소설 속 내용과 일 년 즈음 스터디를 다니며 귀동냥한 이야기를 엮어 보았는데 제법 그럴싸한 글을 쓴 것 치고는 매일 스스로를 다잡고 매매에 임하지 못해 부끄럽다. 숨쉬듯 1일 1소고기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