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상세 |
저자 | 제시 셸 |
출판사 | 에이콘출판사 |
출간일 | 2010/07/30(금) |
후기 | ★★★★☆ (9.0/10.0) |
목차
들어가며
요 몇 달 포스팅이 뜸했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탓에 겨울만 되면 연비가 급격히 떨어지는 몸뚱이, 매일 예기치 못한 이슈가 생기는 프로젝트도 한몫했으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게으름이다. 부지런히 살아야지 😭
마지막 양심이라 하긴 뭐 하지만, 쉬는 동안에도 책은 놓지 않았다. 블로그 공백 기간 읽은 책 중 하나가 이번에 소개할 <더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이다.
총평
게임을 업으로 삼으려면 한 번쯤 읽어보라 권유받는 책 중 한 권.
이전에 🔗리뷰하였던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이 저자 개인의 경험과 철학을 바탕으로 재미의 정의, 게임의 의의를 찾아가는 책이었다면 <더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은 게임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 각 요소의 역할, 요소 간 상호작용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게임을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써 즐겨온 게이머에게 색다른 시선을 선물하고 게임 속 다양한 장치를 치밀하게 설계해야 하는 현업인에게는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책이 제공하는 '렌즈'는 이미 수 차례 게임을 제작 및 운영해본 베테랑까지도 "나의 게임이 정말 재미있는가?" "나의 게임이 올바른 방향으로 서비스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데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문장 수집
게임 디자이너가 되는 길은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좀 더 핵심을 말하자면,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게임에 관한 아이디어를 묶어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게임을 제작하고, 스스로 플레이하고, 다른 사람들도 플레이해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게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분명 그렇겠지요.) 바꾸고, 바꾸고, 또 바꿔서 사람들이 정말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얼마 전 트렌드 코리아 2023을 읽었다. 꽤 많은 내용이 공감되었고 의미 있어 보였다. 그중에서도 "좋은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잘 팔리는 제품이 좋은 제품이다."라는 말이 머리에 남았다.
위 구절과 책에서 발췌한 문장의 결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결과물이 제품이든 서비스든 간에 소위 '잘 나가는 것들'에는 고객 지향과 집요함이라는 공통점이 있나 보다.
상품, 서비스를 기획하다 보면 스스로 제안한 것들이 과하게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이 상품 잘 팔리겠는데?" "이 서비스 칭찬 꽤나 받을 것 같아!" 하며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 자식이니까.
감사하게도 실제 반응이 좋은 경우가 많지만, 혹평을 잔뜩 듣거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돌아보면 좋은 반응이 따랐던 건 대부분 플레이어의 동향과 지표를 고루 참고하여 고심했던 것, 따끔한 피드백이 있었던 건 대개 내가 보기에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플레이어에 대한 이해, 최적의 경험을 위한 공부와 고민이 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핵심 요약
이 책은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제외하더라도 55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놀랍게도 그 많은 내용 중에서 버릴 건 별로 없다. 여러 설명을 예사로 보고 넘길 만큼 내 실력이 무르익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한 줄 한 줄 흘려보내는 게 아까워 각 잡고 정리해 보았다.
그림 1 글씨 크기 9~12포인트 기준 30페이지 정도 나왔다.
하지만 구태여 문서를 첨부하진 않으려 한다. 🔗Harns Kim님의 슬라이드 쉐어나 🔗심플심플심플심플 블로그등 내가 추린 것보다 훨씬 깔끔한 자료가 이미 여럿 있기 때문이다. 대신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만 간단히 남겨본다.
1. 게임의 4가지 기본 요소
저자에 따르면 게임에는 '4대 요소'가 존재한다. 어떤 요소도 나머지 요소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 않으며 각 요소는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 메커니즘: 게임의 절차와 규칙. 게임을 게임이게 하는 것. 도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요소.
- 이야기: 게임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 선형적이거나, 분기되거나,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게임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강화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 미적 요소: 게임의 외관과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의 총체. 플레이어의 경험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플레이어의 몰입을 확장, 극대화한다.
- 기술: 게임을 가능하게 하는 재료나 상황의 총체. 미적 요소가 존재하는, 메커니즘이 발생하는, 이야기가 전달되는 매체 그 자체.
2. 좋은 게임을 가려내기 위한 8가지 필터
게임 디자인은 많은 제약(필터)을 고려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더 많은 필터가 필요할 수 있다.
- 예술적 충동: "이 게임은 옳게 느껴지는가?"
- 인구 통계: "의도한 고객층이 이 게임을 충분히 좋아해 줄 것인가?"
- 경험 디자인: "디자인이 잘 된 게임인가?"
- 혁신: "이 게임은 충분히 참신한가?"
- 사업과 마케팅: "이 게임에 상업적 가치가 있는가?"
- 엔지니어링: "이 게임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가?"
- 사회 집단, 커뮤니티: "게임이 우리의 사회적 혹은 커뮤니티적 목표에 부합할까?"
- 플레이 테스트: 플레이 테스터가 충분히 게임을 즐기는가?"
3. 플레이어에 관한 이해
게임 디자이너는 플레이어가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을지 알아야 하며 심지어 플레이어 자신보다 더 잘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자기 자신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생각, 감정, 욕구를 내밀하게 알기 위한 몇 가지 접근법을 소개한다.
- 투사: 플레이어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본다.
- 인구통계: 집단을 연령, 성별에 따라 나누어 살펴본다.
- 남성이 주로 선호하는 요소: 정복, 경쟁, 파괴, 공간퍼즐, 시행착오
- 여성이 주로 선호하는 요소: 감정, 현실세계, 양육, 대화, 언어퍼즐, 예시를 통한 배움
- 심리통계: 어떤 재미 요소를 추구하는지에 따라 집단을 분류하고 관찰한다. (예. 감각, 공상, 내러티브, 도전, 친목, 발견, 표현 등)
그림 2 리처드 바틀의 플레이어 유형 분류
4. 균형 잡힌 게임을 위한 밸런싱 방법론
게임 메커니즘은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 가장 흔한 12가지 게임 밸런스 유형은 아래와 같다.
- 대칭형: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등한 자원, 힘을 주어 게임을 대칭적으로 만든다. '나이가 어린 플레이어부터 시작하기'처럼 실력이 부족한 플레이어에게 이득을 주는 등 보정을 거치기도 한다.
- 비대칭형: 플레이어들에게 다른 자원, 능력을 부여한다. 실제 세계를 시뮬레이션하거나, 플레이어들에게 각기 다른 경험을 선사하거나, 실력 수준을 맞추거나, 보다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활용한다. (예. 어떤 요소가 항상 다른 요소를 이기게 하여 최강의 수를 없앤 '가위 바위 보')
- 의미 있는 선택: 플레이어에게 다음에 일어날 일, 게임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예. 낮은 위험과 낮은 보상, 높은 위험과 높은 보상)
- 기술과 우연: 플레이어가 연마한 기술, 운이라는 상반되는 힘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
- 머리와 손: 정신적 사고, 육체적 활동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
- 경쟁과 협력: 플레이어가 반목하거나,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식으로 협동하게 한다.
- 게임의 길이: 게임이 너무 짧다면 의미 있는 전략을 개발하고 수행하기 어렵다. 반대로 너무 길면 플레이어가 지루해하거나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 부담스러워한다.
- 보상: 플레이어는 적절하게 평가받길 바란다. (예. 칭찬, 점수 증가, 플레이 연장, 새로운 스테이지 해금, 장관, 표현, 힘, 자원, 완료 경험 등)
- 벌: 적절한 벌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얻는 즐거움을 더한다. 다만, 행동 강화에는 벌보다 보상이 효과적이며 부적절한 벌은 게임이 불공평하다는 인식을 낳을 수 있으므로 주의. (예. 수치심, 점수 손실, 플레이 단축, 역행, 힘의 제거, 자원 소모, 게임 종결 등)
- 자유와 통제된 경험: 플레이어에게 모든 제어권을 넘겨줄 경우, 디자이너가 신경 쓸 여력이 늘어나고 플레이어도 부담을 느낀다. 현실의 지루하고 복잡하며 불필요한 결정, 행동을 종종 없애야 할 필요가 있다.
- 단순함과 복잡함: '좋은 단순함'을 통한 진입 장벽 저하, '좋은 복잡함'을 통한 문제 해결의 즐거움 배가를 노린다.
- 묘사와 사상: 게임은 어느 정도 묘사를 제공하지만, 나머지는 플레이어가 채우도록 남겨둔다. 어디까지 묘사하고 어디까지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길지 결정하는 것.
그림 3 칙센트미하이는 최적 경험에 플로우(flow)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적 경험의 순간 마치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플로우 상태는 도전 과제의 지루함과 좌절감 사이의 좁은 영역 안에 위치해 있다. 섬세한 밸런싱은 플레이어가 플로우 채널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좌측부터 플로우의 개념, 이상적인 플로우의 모습, 현실적인 플로우의 모습. 긴장(좌절감, 불안)과 이완(지루함)이 반복 순환됨을 확인할 수 있다. 1
5. 경험을 판단하는 도구 흥미 곡선
흥미 곡선이란 경험이 진행되는 동안 흥미의 수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흥미를 느끼는 장치나 정도에는 개인 간 차이가 있지만, 아래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해 보자.
- 내재적 흥미: 어떤 사건은 그 자체로 다른 것보다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위험은 안전보다, 화려한 것은 평범한 것보다, 독특한 것은 정상적인 것보다 극적이다.
- 제시 방법의 시정: 엔터테인먼트의 미적 요소에 관한 것.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경험하길 좋아한다.
- 투영: 플레이어의 감성, 상상력으로 경험에 몰두하게 하는 것. 타인보다 지인, 지인보다 자신에 몰입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과 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림 4 좌측은 성공적인 흥미 곡선이다.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 경험을 시작했다가(A) 빠르게 '훅' 지점으로 이동하고(B) 원래 흐름을 찾으며 점차 상승한 뒤(C~F) 클라이맥스를 겪고(G) 만족스러운 결말을 맞는 모습(H)을 확인할 수 있다. 경험이 길어질 경우 우측처럼 흥미 곡선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프랙탈 흥미 곡선이라고 한다.
마치며
게임 디자이너에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
게임의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기획력,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개발력, 보는 이가 단숨에 빠져들 만한 스토리를 구상하고 풀어낼 줄 아는 이야기꾼의 기질, 가상 세계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미적 감각과 애니메이팅 기술, 몰입과 감동을 배가할 작곡 재능, 재주 넘치는 동료 사이를 오가며 작업이 더욱 매끄럽게 진행되게끔 돕거나 작품이 더욱 널리 회자될 수 있도록 알리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저자는 이렇듯 다채로운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게임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잘 나가다 이게 무슨 소년 만화 같은 소리람 😶 싶지만 이유가 있다.
재미있는 게임은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폐기되고 극소수만이 여러 차례 벼려져 비로소 빛을 본다.
게임, 게임 디자인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과정을 견디기 벅찰 것이다. 그렇기에 깨지고 지쳐도 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게 최고의 덕목이라는 뜻이다.
그림 5 프로토타입의 순환 모델. ① 기본적인 디자인을 생각하고 → ② 디자인의 가장 큰 위험을 찾아내고 → ③ 위험을 완화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 ④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 → ⑤ 프로토타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더욱 자세한 디자인을 떠올린 뒤 → ⑥ 두 번째 단계로 돌아가서 게임의 만듦새를 점진적으로 완성한다. 번번이 품질에 집착하기보다 많은 순환을 빠르고 의미 있게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약 4년 동안이나 고정적인 수익 없이 혈혈단신으로 게임 개발에 몰두하다 스타듀밸리라는 초대박을 터뜨린 에릭 바론 아닐까? 그의 성공을 떠올리며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 시큰함을 느낀 까닭은 최근 나 스스로 열정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 웬만한 게임에서 자극을 받기 어려워진 건지, 직급과 연차가 있으니 더욱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그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 지쳤기 때문인지 지금으로썬 알 수 없다. 다만, 작은 불씨가 언제라도 크고 뜨겁게 타오를 수 있도록 소중히 지키며 장작도 성실하게 모아두어야겠다 싶을 뿐이다.
영상 1 한국어 자막이 추가된 스타듀밸리 개발 이야기
불쏘시개 영상과 함께 마무리 🔥
-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는 느낌을 받아 마냥 기분이 고양되고 행복감을 맛보는 순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