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상세 |
저자 | 피터 틸 외 1인 |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사 |
출간일 | 2014/11/20(목) |
후기 | ★★★☆ (7.0/10.0) |
목차
들어가며
제로 투 원은 괜찮은 경제경영, 자기계발 서적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꼭 거론되는 책 중 하나다.
그럼에도 여태껏 본서를 읽지 않았던 이유는 책이 지금의 나에게는 다소 요원해 보이는 기업 창립 및 운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나 염려되서였다. 물론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았으나…… 😅
총평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친절한 지침서, 조직을 이끄는 이들에게는 혁신을 시도하게 하는 촉매, 개인에게는 살아감에 있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책.
현대인은 스스로를 '톱니바퀴'에 비유하곤 한다. 자신은 거대한 기계에 속 작은 부품일 뿐이며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농담이 마냥 유쾌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내 형편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요, 막연한 미래가 두렵기 때문이리라.
여러 책과 강연은 이런 대중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무엇'이나 '왜' 1는 있어도 '어떻게'는 없다는 것이다. 2
제로 투 원은 어떻게에 대한 책이다. 본서는 시장을 독차지하기 위해 기존의 제품과 서비스를 답습하는 대신, 남들은 부정하거나 무시하지만 나만은 중요하다 알고 있는 것을 찾아 활용하라고 말한다.
책의 요지는 이미 있는 것을 베껴 늘리는 일(1→n)은 쉽지만, 결국 한정된 먹거리를 더욱 빠르게 동낸다는 것이다. 반대로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것(0→1)은 다른 이의 밥그릇을 건들지 않으면서 내 배를 불리는 일이고.
따라서 저자의 입장에서 '독점'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저자에게 독점이란 창의적인 이에게 주어지는 막대한 보상이자 부와 명예를 손에 넣고자 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력이고 세상을 진일보하는 계기이다. 더불어 우리 모두 어려서부터 자본주의의 근간이라 배워온 '경쟁'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행위일 뿐이라는 게 이 책의 뼈대다.
나는 개인, 기업이 비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내어놓는다는 점에서 경쟁과 독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모든 이가 덮어놓고 손가락질하는 독점을 색다르고 흥미롭게 해석한 점, 이를 근거로 탈피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 점, 책 속 사고를 바탕으로 '제로 투 원'을 실현한 방법까지 가감 없이 담아낸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문장 수집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모형을 모방하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 창조라는 행위는 단 한 번 뿐이며, 창조의 순간도 단 한 번뿐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구절. 다른 모든 부분이 사실상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에 해당한다.
핵심 요약
1. 독점, 경쟁의 이데올로기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은 혁신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독점기업은 혁신을 계속 지속할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독점 이윤 덕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경쟁 기업들은 꿈도 꾸지 못할 야심찬 연구 프로젝트에도 돈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경쟁을 가치의 표식으로 보지 않고 파괴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분별이 있는 것이다.
본서가 말하는 독점기업이란, 자기 분야에서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감히 비슷한 제품이나 서비스조차 내놓지 못하는 회사를 뜻한다. 본서에 의하면 차원이 다른 알고리즘을 고안해 낸 구글은 2012년 5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동기간 항공사들은 1,600억 달러의 매출을 냈기 때문에 구글의 몸집이 일견 작아 보일 수 있으나, 구글의 매출 중 21%가 이익에 해당했다. 액수로 따지면 항공사보다 100배가량 많았던 것.
게다가 🔗 재작년 구글의 마진율은 56%에 달했다. 8년 전 이미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큰 수익을 냈음에도 끈질기게 생존·성장하여 독점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한 것이다. 나아가 구글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작년 말 로봇 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등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그야말로 독점 이윤을 누리면서 야심찬 연구까지 손을 댄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2. 라스트 무버 어드벤티지
어느 기업이 가치가 있으려면 앞으로 성장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회사가 존속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가들은 오직 '단기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다.
기업이 단기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일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10년 후에도 존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점 기업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을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다.
- 독자 기술: 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기업의 제품, 서비스는 복제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따라서 독자 기술은 기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이점이다.
- 네트워크 효과: 네트워크 효과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가 더욱 유용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초창기 페이스북은 하버드 대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끈 서비스였을 뿐,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게 디자인된 것이 아니었다.
- 규모의 경제: 독점 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강력해진다. 판매량이 많을수록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고정비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의 경우, 제품 하나를 추가로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무에 가깝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누릴 수 있다. 훌륭한 신생 기업은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이점을 이해하고 더욱 많은 잠재 사용자가 있는 시장을 노린다.
- 브랜드 전략: 독점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튼튼한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애플이다. 애플은 하드웨어 기술과 소프트웨어 기술 그리고 자체 콘텐츠 생태계라는 독점적 우위 요소 위에 매력적인 디자인, 세련된 오프라인 스토어, 철저히 통제되는 소비자 경험, 대대적인 광고, 프리미엄 제품에 걸맞은 가격 포지셔닝 등을 첨가하여 독보적인 브랜드로 거듭난 바 있다. 반대로 실체가 아닌 브랜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3. 세일즈의 중요성
공학도들은 근사한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만드는 쪽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만들었다고 해서 고객들이 저절로 찾아오는 일은 없다. 우리는 고객이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하고, 이 작업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다 널리 알리고 더욱 많이 판매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곤 한다. 전략기획, 마케팅, 홍보, 영업은 잘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에 요행과 화술로 숟가락을 얹는 일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제품이나 서비스가 우수하여 입소문만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입소문조차 고도의 전략인 경우가 많다.
4. 테슬라의 성공
테슬라 역시 청정기술이라는 사회적 유행에 편승했지만, 테슬라는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은 많은 교훈을 준다.
저자는 여러 기업에 낀 거품을 지적하며 반짝 유행에 기대는 기업은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대 초 수없이 탄생하고 사라져 간 청정기술 기업들이다. 그중 테슬라는 지금까지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테슬라처럼 장시간 관련 영역을 선도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다음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지니고 있었다.
- 기술: 점진적인 개선이 아닌, 획기적인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 시기: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 독점: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 사람: 제대로 된 팀을 가지고 있는가?
- 유통: 제품을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 존속성: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 간 방어할 수 있는가?
- 숨겨진 비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하였는가?
5. 창업자의 역설
기업이 알아야 할 교훈은 우리에게는 창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상하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창업자들을 더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한 점진적 발전을 넘어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특이한 개인들이 필요하다.
창업자가 알아야 할 교훈은 개인에 대한 명성과 칭찬은 언제든지 오명과 축줄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창업자들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창업자들이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위대한 창업자는 가지 회사의 모든 이들에게서 최선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지난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른바 '문샷(Moonshot) 프로젝트'에 대한 연설로 대중을 휘어잡았다. 그는 달을 더욱 잘 관측하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높이는 대신, 달에 갈 수 있는 탐사선을 만들겠노라 공언했다. 그리고 1969년 닐 암스트롱이 한 작은 발걸음이자,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후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은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게끔 만드는 독창적 사고를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 본서가 말하는 창업자란, 이렇듯 새로운 문제를 찾고 혁신적으로 풀어내어 기업을 키워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다만, 과감함이 다는 아니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화적 인물 스티브 잡스는 CEO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퇴출된 적이 있다. 특유의 괴짜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회사 중역들과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관과 능력을 따르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다른 이와의 협력과 이해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마치며
상술한 것처럼 세계적인 경영자의 이야기는 감탄을 자아내는 한편,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마냥 긍정할 수만은 없었다.
예컨대 저자는 "출근하지 않고 원격지에서 일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지 않으면 생각의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사무실로 출근하기 싫다면 테슬라를 떠나라."라는 일론 머스크의 주장도 저자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이 출간된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덮치며 많은 노동자는 좋든 싫든 재택근무에 돌입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 집중도가 저하되고 보고를 위한 보고가 늘어나는 등 근로 효율성이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재택근무를 피고용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함과 동시에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뉴 노멀 시대의 업무 패러다임으로 보는 기업도 있다. 결괏값이 산업군, 기업 규모, 생산성 평가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하나의 정답이 있는 사안이라고 보긴 어렵겠으나, 세상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만큼 면 대 면으로 일하지 않는 것은 틀리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또 저자는 "주식이 완벽한 인센티브가 될 수는 없지만, 회사의 창업자가 사내의 모든 이들을 크게 보고 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에는 최선의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사주를 받은 SK바이오사이언스 직원들이 소위 '줄퇴사'를 감행한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위탁 생산 소식 덕분에 주가가 약 370% 상승했지만, 근무 중일 경우 우리 사주를 팔 수 없으므로 차액을 챙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것.
주식을 배당받은 구성원이 더욱 큰 소속감을 느끼고 기업에 이바지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그림이 아닐까.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라는 위기의식과 개인주의가 날로 커져가는 요즈음 어떻게 하면 순수한 열정,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볼 일이다.
저자도 시인했듯 기업가 정신,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에는 이렇다 할 공식이 없다. 앞으로 등장할 또 다른 위대한 기업가는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제로 투 원을 실현할 것이다. 그들이 앞서 살펴보았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아야겠다.
나 또한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으며 원이 되기 위해 머리를 굴려봐야지.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