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이 인간,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 저자는 인간을 의지가 충만한 자유로운 존재라 설명한다. 인간은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면 더 나은 방향을 향해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그의 관점은 인간을 유전자 보존의 매개, 본능의 산물로 보는 결정론적 사고와 대비된다.
개요
저자 ㅣ 빅터 프랭클
출판사 ㅣ 청아출판사
출간일 ㅣ 2020년 5월 30일(토)
후기 ㅣ ★★★★ (8.0/10.0)
총평
극한적 상황에서 발견한 인간의 가능성.
나는 그동안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배부른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 여겼다. 생이 풍족하다 못해 권태로울 지경이라 여흥 거리를 찾다 끝끝내 생존과 하등 관계없어 보이는 질문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나치 수용소에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면 과연 살아'가고' 있다 할 수 있을까?
당시 정권의 잔혹함에 대해 증언한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악의 고발보다는 어려움 속에서 발견한 다채로운 인간 군상과 가치관, 인사이트를 전한 서적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책.
문장 수집
누구나 한 번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명언을 접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종종 시련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이 이야기를 인스타그램 피드에 업로드하거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로 설정해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만, 이 문장만 가지고서는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고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 해답은 저자가 인용한 니체의 또 다른 문장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본서를 관통하는 교훈이자 저자가 창안한 로고테라피(의미치료)의 요체이기도 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키워드 및 코멘트
1. 삶의 의미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접했지만, 반대로 삶이 내게 "당신은 왜 사는가?"라고 묻고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개인마다, 상황마다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추상적인 물음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나만의 고유한 일과 사명을 찾고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견해가 인상적이었다.
2. 범결정론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인간 집단의 행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통해서 얻은 사실 뿐이고, 각 개인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채로 남아있다.
나는 쿨병 걸린 찐따, 일명 쿨찐이다 😅 나는 때때로 과할 만큼 냉소적인 편인데 그런 내 모습을 현실적인 것 뿐이라고 포장하곤 한다. 상처입지 않기 위해 무의식 중에 방어적인 자세가 튀어나오는 것이겠지만, 간혹 이런 스탠스가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소중한 사람들을 상처 입히기도 해서 최대한 상냥하고 나이브한 모습을 갖추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쿨찐은 염세적이고 범결정론적이다. 매사 타고난 것은 바꿀 수 없고 거대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기에 저항해봐야 소용 없다 여긴다. 때문에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보며 "멍청하고 비효율적이다."라고 혀를 찰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비웃은 이들은 이따금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쿨찐은 그들보다 영리한 게 아니다. 그저 주변에 감사하고 주어진 것들을 이해 및 활용하려 노력하기보다 남들을 깔보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겁쟁이일 뿐이다.
저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렇다고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보며 그런 자신을 시련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용기 있는 도전을 거듭했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러나 내가 인간의 가능성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3. 과잉 의도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접한 동화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곤 했다. 우리는 동화같은 삶을 꿈꾸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는다. 저자는 이러한 풍토를 비판하며 행복은 이루려고 한다고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어떠한 행위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행복해야 할 이유' 대신 '행복'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과잉 의도'에 해당하며 신경 질환으로 어어질 수 있다고.
AI·로봇을 통한 일자리 대체, 심화되는 경쟁 및 양극화가 낳은 실존적 욕구의 좌절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불안을 떨쳐버리고자 나를 포함한 주위 많은 분이 현금, 부동산, 가상 화폐 같은 자산에 목을 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 같은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더 많은 선택지를 손에 쥘 수 있게 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언제나 본질 즉,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려 애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