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각들
좁아지는 길, 손에 몇 장 남지 않은 카드,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들, 점점 줄어가는 의자, 텅 빈 운동장.
처음 사회와 업계에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참 큰 포부를 안고 있었다. 게임과 게이머의 연결로가 되고 싶었고 더 나은 게임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몇 년 진탕 구르다 보니 이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 덮어두고 "뭐가 됐든 부딪혀보고 해낼 거야!"를 외칠 시기는 끝나가지 않나 싶다. 슬슬 현실적으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 '프로젝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분하고 발전하며 차별화를 꿰해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성취, 성장, 생존을 위해 💪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자료를 여럿 찾아보기도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의 성과가 곧 나의 브랜드다."였다. 그렇다면 올 한해 나는 어떤 족적을 남겼나?
프로젝트
작년 9월 이직해 어느덧 이 조직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작년의 목표는 '적응'이었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환경,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익숙해지고자 했다.
예를 들어 여느 조직이 그러하듯 이곳에도 여러 암묵지가 있었다.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프로세스, 조직 내에서만 사용하는 은어 같은 것들. 그래서 작년에는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다른 분들도 알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문서화 해 팀에 공유하기도 했다.
올해의 목표는 '정착'이었다. 팀장님이나 선배님들처럼 조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하진 못하더라도 나만의 영역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서 지도와 도움만 받는 게 아닌, 나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보람과 안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몇 가지 부분은 꽤 능숙하게 해내게 되었다. 올초 "조직에 기여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상의드렸는데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이끌어주신 팀장님과 팀원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
- 판매안 관리: 아바타, 탈 것, 펫, 설치물 등 치장성 아이템 판매를 전담하였다. 치장성 아이템은 전투 밸런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다 외형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이머도 많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핵심 상품이라 여기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게임이라는 종합 예술에서 심미성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인 데다 나노사회, 메타버스* 같은 키워드가 대두되며 가상 세계에서의 개성이 나날이 주목받는 요즈음 치장성 아이템 판매를 맡았다는 데 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2021년 정말 놀라우리만큼 많은 분이 우리 프로젝트를 찾아주셨고 동시에 그래픽실에서 내외부 의견을 경청하여 치장성 아이템의 퀄리티를 높여주신 덕분에 판매 결과도 크게 좋아졌다.
* 메타버스는 '나'를 가상 공간에 투입시켜 더욱 다양한 체험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게임(특히 RPG)은 '주인공'의 일대기를 좇으며 게이머를 현실에서 분리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으므로 결은 조금 다르다. - 콘텐츠 기획: 기존의 판매처, 판매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여러 방향을 고민하였다.
- 배틀 패스: 먼저 작년부터 꼭 도입하고 싶었던 배틀 패스형 과금 상품을 추가했다. [▶ 배틀 패스 -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혁신을 이룬 방법] 등 이미 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두었기 때문에 콘텐츠 준비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미션 난이도, 보상량 등을 논의할 때 기획실과 의견을 좁히기 어려웠던 면이 있었지만……. (나는 리텐션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미션은 숨 쉬듯 쉽게 설계하되, 보상은 지금보다 조금 적길 바랐다. 반면 기획실에서는 콘텐츠 이용 장려를 바라서 미션은 다소 어렵게 하고 보상을 풍성하게 지급하길 제안했다.) 여러 차례의 의견 공유를 거쳐 적당한 협의점을 찾았으니 해피엔딩!
- 파츠 개별 판매: 처음 프로젝트를 접했을 때, 얼굴 장식 아바타는 패키지 형태로만 획득할 수 있는 게 아쉬웠다. 패키지를 제공하면 객단가가 높아지긴 하지만, 특정 부위만 구매하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바타를 파츠 별로 내놓으면 어떨까 했는데 내부에서도 이 의견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드레스룸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이게 됐다. 드레스룸을 론칭하는 과정에서 신규 콘텐츠 제작 시 자칫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예컨대 드레스룸에서 아바타를 착용하면 해당 아바타 옆에 '보유 중', '구매 가능', '구매 불가' 같은 라벨을 추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단순히 의견만 개진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 라벨을 붙이기 위한 프로세스와 사이드 이펙트를 고민해야 한다든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구원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 데이터 세팅: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할 땐 운영 툴을 쓸 일이 많지 않았는데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며 운영 툴과 친해져야 했다. 상품 이름부터 가격, 구성, 구매 제한 등을 직접 설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게임 마스터로 지내는 동안 운영 툴을 설계하고 운용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신규 콘텐츠에 관한 기능을 제안하거나 기존 기능 중 휴먼 에러가 발생하기 쉬운 부분을 개선하기도 했고.
- 아이템 제작: 팔 물건이 없다면 판매안 기획, 데이터 세팅 모두 할 수 없다. 게임 마스터,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할 땐 사업실이나 기획실에서 이미 만들어둔 아이템을 고르고 지급하였는데 과금 모델을 짜다 보니 내가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하고 발주해야 했다. 게임 아이템이야 이미 수천수만 가지 있으니 비슷한 걸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여겼는데 막상 발주를 하려니 등급, 툴팁, 귀속/거래/판매/분해/밀봉 여부 등 여러 항목을 지정해야 하더라. 새로운 협업 툴 학습, 제작 일정 트래킹, 완성품 테스트도 품이 적게 들진 않았고. 조금 더 효율적인 방식이 있으려나 🤔
자기 계발
재작년 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큰 수술을 받으셨다. 그때 나는 부모님께 의존하기보다 받은 걸 돌려드려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체감했다. 부모님께 감사를 표하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으나, 가장 먼저 떠오른 견 경제적 자립과 보은이었다. 그래서 근로 소득을 보다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식을 배우려 노력하는 중이다.
- 투자: 친구의 권유로 주식 스터디에 합류했다. 전업 투자자부터 금융 업계 종사자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 하고 있어 시시각각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여러 관점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직 많이 서툴고 손해도 곧잘 보지만, 은행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데 의의를 두는 중. 내년엔 주식은 물론, 부동산 쪽도 공부해봐야지.
- 독서: 원래도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문학에는 영 관심이 없으나, 올해는 경제/투자에 관한 책을 특히 집중적으로 읽었다. 개중에는 가뭄에 콩 나듯 인문학 서적도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북 리뷰] 사피엔스]에서 다룬 '사피엔스'. 일상에 관한 고찰과 과학적 해석이 감탄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도 이런 감동이 있는 책이라고 하던데 분량이 어마 무시해 완독 할 수 있을까…….
- 건강: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명한 십 일 자 복근이 나의 자랑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젠 정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건강검진 시마다 근육량을 길러야 한다는 피드백을 귀에 딱지가 앉게 받는데 올해는 마른 비만 목전이라는 내용까지 있어 충격이 매우 매우 컸다. 20대는 멋짐을 위해, 30대는 생존을 위해 운동한다는 말에 이렇게 공감하게 될 줄이야. 먼지가 뽀얗게 쌓인 링콘을 다시 잡을 때가 온 것 같다.
- 블로그: 블로그는 스스로 더 열심히 활동하고 그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자 개설하였다. 그리고 올해 월평균 세 편 이상의 글을 업로드할 수 있었다. "나의 성과가 곧 나의 브랜드다."라고 선언한 만큼 게임, 책, 아티클, 서비스 가리지 않고 보다 성실하게 접해야지. 한편 이왕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 수익화를 꿰해볼까 싶어 8월 카카오 애드핏 심사를 받았고 단번에 통과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내 블로그는 폭넓은 정보를 상세히 전하는 장소라기보다 혼자 공부한 내용을 끄적거리는 곳에 가까워 방문자 수가 많지 않고 그에 따른 반응은 더더욱 적지만, 꾸준히 찾아주시고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어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작고 귀여운 잔고는 양질의 포스팅을 위한 아메리카노로 대체될 예정 ☕
- 자격증: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디라고 다르겠냐만 게임 업계는 특히 사람이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곳이므로. 자격증 공부는 이런 사람의 감정, 동기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자격증 취득 전후 엄청난 변화가 있진 않았으나, 내가 무언가를 고민하고 결심해 여가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내년에는
학교 다닐 때부터 신년 계획을 해보라는 숙제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써봤자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12월에는 다시 한번 들춰보고 자괴감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적어도 이것만큼은 꼭! 싶은 것들만 남겨둔다.
- 담당 프로젝트 데이터 열람 습관화 (최소 일 3회, 시간대별 목표로)
- 타 프로젝트 콘텐츠 및 과금 모델 분석 1건 이상 문서화
- 데이터 분석 준전문가, 검색광고마케터 자격증 취득
- 주식 계좌 월 수익률 10%대 유지
타이핑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쓸 게 별로 없겠구나 싶었는데 마무리하려 하니 구구절절 많이도 늘어놓았다. 어느새 무덤덤해졌지만, 들여다보면 다사다난한 한 해였구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든 그것이 최선이었고 내년에는 더 멋진 기회와 결정의 순간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나에게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