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바님 메모장을 샀는데 글이 써져있어요. 환불 부탁드립니다." 시청자의 신랄한 유머와 함께하는 책 홍보 영상.
저자 ㅣ 선바
출판사 ㅣ 위즈덤하우스
출간일 ㅣ 2019년 7월 25일(목)
후기 ㅣ ★★★☆ (7.0/10.0)
Part 1. 총평
10년만에 대학 졸업, 취미는 게임, 소속은 취업과 거리가 멀다는 '문사철'. 남들이 정석적인 방향이라 부르는 길을 걷진 않았으나, 인생에는 답이 아닌 질문만 있으면 된다는 1인 크리에이터 선바의 소탈한 이야기.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명제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의 상처가 곪아 터질 무렵, 힐링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누구나 잠깐은 지칠 수 있고 조금 실수해도 괜찮으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무작정 아픔을 인내하라는 글, 크고작은 고통이 언젠가 잊힐 거라는 글 모두 싫어하는 편이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있고 해결책은 천차만별인데 에세이, 명상 카테고리로 분류된 책은 대체로 작가가 자신의 케이스에 적용해 성공을 거둔 방법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인생의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가르치려 드는 게 거슬렸다.
밤마다 우울에 몸부림치는 중이라는 둥 그래도 떡볶이는 먹고싶다는 둥 어떻게든 공감을 이끌어내려 하다 솔루션은 부실한 용두사미형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런 위로가 간절해지는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읽을만한 책.
Part 2. 문장 수집
"나는 좋든 싫든 살아있는 동안 나와 평생 살아야 한다. 그러니 좀 못 미덥고 못해도 보듬어주며 살아가자."
Part 3. 코멘트
최근 나는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발칙한 꿈은 꾸어본 적도 없지만, 머리가 좀 커지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두렵다.
게다가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걸음 떼면 이때다 하고 달려들어 상처를 주는 사람이 널렸으니 몇 보 채 가기도 전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다. 문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달까.
이런 멘탈로 적막강산에 혼자 있으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아 얼마 전부터 업무 중에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생방송 다시 보기 영상을 배경 음악처럼 쓰고 있다. 그 스트리머가 이 책의 저자 선바다.
나는 크레이지아케이드 BnB M 론칭 전, IP에 대한 10~20대 플레이어의 생각을 조사하던 중 선바를 처음 접했다. 유쾌하면서도 바르고 맑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그의 영상을 조금 더 찾아봤는데 추억의 플래시 게임에 관한 게 눈에 띄었고 보고 있자니 근심 걱정 없던 유년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정주행했다. 그렇게 다 본 영상이 늘어날수록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콘텐츠를 체험하는 선바가 아니라, 인간 김선우가 의미 있어졌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는데 읽지 않을 수가.
게다가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답이랄 게 없는 삶에 대해 누군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딱 질색이었지만, 담담하고 잔잔한 대화는 간절했기 때문이다.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팬들 사이에서는 '인생노답', '인생희희' 등으로 불리는 듯하다.)는 불안하고 무기력한 내게 잠시나마 쉴터가 되어주었다.
먼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려 하지 않은 점이 편안했다. 저자는 자신이 남을 가르칠 만큼 대단하지 않다며 자세를 낮추고 독자 스스로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 의견을 풀어냈다.
그중에서 특히 선행에 대한 견해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종종 주변 사람에게 끌려다니곤 한다. 괜히 상대를 자극하거나 마찰을 빚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 후에 따라오는 사람 좋다는 평도 놓치기 싫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분이 나와 일할 때 기분 좋았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으나, 내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택하고 싶은 방향을 애써 외면하거나 속된 말로 호구 취급당할 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방긋 웃어야 했으니까.
저자는 착한 사람도 단호할 수 있다며 능동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것, 수동적으로 누군가를 따르며 자신을 포기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했다. 문장 한 줄을 읽는다고 지금까지 만들어온 삶의 방식이 급변하진 않겠으나, 여러모로 느낀 바가 있었던 부분.
다음으로 진지하고 긴 호흡으로 쓰인 소재가 있었지만, 글보다 여백이 많을 만큼 짤막한 구간이 많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최근 읽은 책들은 대부분 굉장한 밀도를 자랑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다음 독서에 관한 부담감을 조성했다. 생산적인 삶에 관한 강박은 스트레스가 되었고 침대에 누워 시간만 보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미움도 늘어갔다. 하지만 이 책을 가볍게 떼고 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주 조금만 더 빽빽한 책을 읽거나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해보며 단계적으로 우울감을 극복해보자는 마음이 샌겼다. 읽는 이에게 여유를 선물하는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
소소한 깨달음을 일깨워주고 느긋함을 상기시켜준 저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쓰다보니 서평인지 일기인지 모호한 글이 됐다 😵 정신 차리고 기운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