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상세 |
저자 | 라프 코스터 |
출판사 | 길벗 |
출간일 | 2017/03/25(토) |
후기 | ★★★★ (8.0/10.0) |
목차
들어가며
어릴 적 내게 게임은 놀이공원이었다.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가슴 뛰는 모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린 시절 느낀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곳곳에 흩뿌려진 아이템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팩맨처럼 여러 게임을 정신없이 격파해나갔다.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프로로 인정받고 싶은 소망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혼란은 커져만 갔다. 소위 무엇류, 무엇 라이크라고 하던가. 매출 순위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든 널리 회자되지 못한 작품이든 비주얼이나 디테일 정도만 다를 뿐, 동일한 골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이야기처럼 게임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죽이는 데 쓰이는 양산품이며 내가 여태껏 좇아온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호모 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하였고 예술, 종교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렇다면 이미 누군가 나처럼 게임(꼭 소프트웨어 장난감이 아니어도 괜찮다.)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창작, 재미에 관한 견해를 내어놓았겠지. 나는 그 답이 궁금하고도 절실했다.
총평
"너는 네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니?"
이 책은 저자의 할아버지가 던진 질문에서 출발했다. 소방서장으로 평생을 타인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는 데 바친 할아버지는 게임 디자이너인 저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근거로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그에게 게임이란 여러 시도를 통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 그 자체이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동 양식을 일러주는 교구였다. 음악, 회화 같은 전통적인 예술만큼이나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나아가 저자는 게임이 여러 이들로 하여금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게 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여겼다.
본서는 저자가 이 같은 답을 내리기까지 게임을 요소별로 해체하고, 게임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고, 게임에 녹아든 의도를 살펴보는 과정이 담긴 책이다.
누군가의 서평처럼 '재미'와 '이론'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다. 전자는 유쾌하고 짜릿해 보이는 반면, 후자는 떠올리기만 해도 하품이 절로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단어가 뭉치니 상상 이상으로 흥미진진해지더라. 수많은 게임을 별생각 없이 소비하며 막연히 느낀 점들이 명문화될 때의 개운함이란. 당연히 저자의 주장만이 진리는 아니지만 울티마 온라인 같은 불후의 역작이 탄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리빙 레전드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앞서 늘어놓은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기분이다.
문장 수집
다른 어떤 매체의 창작자도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꿀 만한 물건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게임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게임에 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한순간의 말초적 자극을 위한 유흥 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악으로 분류하기도 하였으니 저만하면 양반인가 싶기도 하고? 🙄
아무튼 이 피상적이고 편향적인 생각을 누구보다 앞장 서 개선해나가야 하는 업계 종사자들 중에도 게임을 유치한 애들 장난,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노동의 가치가 날로 추락하는 요즈음, 회사나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두어도 내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 위해 냉소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업, 작품, 동료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폄하하지 않길 바란다. 허무하고 괴로운 날도 있겠지만, 여느 창작자처럼 자신이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것들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가치 있게 활용하며 발전시켜나가길 바란다.
비단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어볼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
키워드 및 코멘트
1.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의 재미는 게임을 숙달하는 것에서 온다. 숙달은 이해로부터 온다. 퍼즐을 푸는 행위가 게임을 재미있게 만든다.
뇌는 늘 새로운 자극을 갈망한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고 정리하려 든다. 그게 레이드 기믹이든 모의고사 문제든지 간에.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게임은 몇 가지 패턴을 단순화, 상징화하여 비교적 쉽고 흥미롭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한 문제를 틀릴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모의고사 문제와 달리, 결과에 대한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건 덤. 이것이 게임의 본질이자 게임이 중요한 이유이다.
2. 학습의 문제점
만약 게임에 준비 단계가 전혀 없다면 운에 기대는 게임이라 하고, 공간 감각이 없다면 게임이 단순하다고 말한다. 코어 메커니즘이 없다면 이 게임은 게임 시스템이 아예 없다고 말한다. 도전의 변화폭이 없다면 금세 지루해진다. 선택이 다양하지 않다면 게임이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기술이 없어도 된다면 게임은 따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계속 새로운 충격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게임이 가능성의 공간을 넓히려 노력한다면 게이머는 주어진 패턴을 반복 학습하며 동선 최적화, 보상 극대화를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성껏 빚어낸 작품이라도 언젠가 지루해질 수 있음을 이해하고 게이머가 게임 또는 콘텐츠에서 에서 이탈하기 전, 의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너무 쉽거나 어렵지 않게,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난이도를 조절하면서.
3. 사람들의 문제
규칙을 깨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을 알아야 한다지만,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을 체계화하거나 비평하지 않고 길드의 도제 방식으로 일해왔고, 자신이 본 대로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투자자나 출판사도 게임을 만들어 파는 것만 생각한다.
간혹 투자자나 사업 조직이 악의 축으로 묘사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기막힌 게임이라도 얼마 가지 않아 서비스를 종료해야 할지 모른다. 어마 무시한 원조가 있다면 모를까 인건비, 시설비, 연구비 등을 매출에서 충당해야 하므로…… 😥
투자자와 사업 조직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 효과적인 개발 및 운영을 위해 다른 작품을 레퍼런스 삼는 것은 현실적으로 용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금물.
4. 맥락 속의 게임
우리가 게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지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크고, 복잡하며, 해석의 여지가 있으면서,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무언가를 말이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게임과 상호작용하고 난 후에 다시 돌아와 기존의 도전에서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로스트아크의 금강선 디렉터는 참 다양한 명언을 남겼다. "저희는 계속해서 게임을 만들겠습니다." 라거나, "게임 전체 매출의 17%를 포기하겠습니다." 라거나.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게이머를 고객이 아닌 동반자이자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플레이포럼 인터뷰
저자의 주장처럼 게임에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이게 게임이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뜻하진 않는다.
2020년 발매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Ⅱ(이하 '라오어 2')는 팬들 사이에서 소위 없는 게임으로 불린다. 작품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때문에 명작으로 남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이하 '라오어')의 공식 후속작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라오어2가 라오어의 주요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점, 전작 속 주인공을 예우하지 않는 점 등을 차처 하더라도 시종일관 게이머의 머리 꼭대기에서 "폭력은 나쁘다."라는 메시지를 외쳐대는 오만함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계관과 어우러지지 못한 정치적 올바름 요소 역시 다양성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보다 불편함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어 2는 2020년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GOTY)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영화에 버금가는 연출, 혐오와 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때로는 과감한 시도로 벽을 무너뜨려야 함을 알고있고 닐 드럭만 디렉터, 너티독의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지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게임이 자신의 뜻을 폭력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전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자, 퀴어 캐릭터를 뜬금 없이 등장시킨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확실히 게임은 누군가에게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게임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게이머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5. 엔터테인먼트의 윤리
게임이라는 매체가 그저 훌륭하고 멋진 장난감이라고 생각해서 가지고 노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최소한 그 과정에서 누구도 해를 입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이 훌륭하고 멋진 장난감을 매우 매우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에 쓰이는 도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똑같이 표적을 노려 맞히는 게임이어도 풀어가는 방식에 따라 서든어택이 될 수도, 포켓몬 스냅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요구할 수 있는 행동은 '특정 대상 공격하기', '타이밍에 맞춰 장애물 피하기'처럼 다소 원초적이지만(그래서 새로운 루뎀을 고안해내야 하지만) 포장 방법만 비틀어도 게이머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게임은 그 근간이 되는 목표와 작동 방식은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사항까지 두루 책임질 의무가 있다.
좌측은 적에게 총구를 겨누고 우측은 사진기에 신비로운 생명체를 담는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2017년 개최한 공모전에서 코피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피노 델 미트파이' 일러스트에 특별상을 수여해 구설수에 올랐다. 작품이 실존하는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도 모자라 인신매매부터 살인에 이르는 설정까지 공공연하게 차용했기 때문이다. 논란은 게임의 개발 및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시프트업이 수상을 취소하며 일단락되었다. 🔗 한경닷컴 게임톡 기사
나는 이 사건이 게임계에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한다. 도가 지나칠 만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는 비록 허구라 할지라도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 강한 반감을 산다는 것을, 많은 게이머가 더이상 게임을 천박한 오락거리로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업계는 그들의 높아진 기대에 기꺼이 응해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 중 하나였다고.
리뷰를 마무리하는 지금, 본서는 게임과 게임 디자이너가 존재하는 이유를 백조의 헤엄처럼 설명한 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다가도 종종 "이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 발버둥 쳤구나."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어서.
동시에 나도 언젠가 내 삶과 업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정립할 수 있을지, 가능했다면 스스로에게 퍽 흡족스러운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문득 생각날 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봐야지.